[시] 질경이 - 류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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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경이

                                                                  류시화



그것은 갑자기 뿌리를 내렸다, 뽑아낼 새도 없이
슬픔은
질경이와도 같은 것
아무도 몰래 영토를 넓혀
다른 식물의 감정들까지 건드린다



어떤 사람은 질경이가
이기적이라고 말한다
서둘러 뽑아 버릴수록 좋다고
그냥 내버려 두면 머지 않아
질경이가
인생의 정원을 망가뜨린다고



그러나 아무도 질경이를 거부할 수는 없으리라
한때 나는 삶에서
슬픔에 의지한 적이 있었다
여름이 가장 힘들고 외로웠을 때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슬픔만이 있었을 뿐



질경이의 이마 위로
여름의 태양이 지나간다
질경이는 내게
단호한 눈짓으로 말한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또 타인으로부터
얼마만큼 거리를 두라고



얼마나 많은 날을 나는
내 안에서 방황했던가
8월의 해시계 아래서 나는
나 자신을 껴안고
질경이의 영토를 지나왔다
여름의 그토록 무덥고 긴 날에

 


시인 류시화


1957년 출생. 경희대학교 국문학과 졸업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1980~1983년 시운동 동인으로 활동
1983~1990년 작품활동 중단, 구도의 길을 걷기 시작하다이 기간 동안 명상서적 번역작업을 하다, '성자가 된 청소부' '성자가 되기를 거부한 수도승' '장자, 도를 말하다' '새들의 회의' 등명상과 인간의식 진화에 대한 주요서적 40여권 번역


1988년 '요가난다 명상센터'등 미국 캘리포니아의 여러 명상센터들 체험'성자가 된 청소부'의 저자 바바 하리 다스와 만남
1989년 두 차례에 걸쳐 인도 여행, 라즈니쉬 명상센터 생활1988~1991년 가타 명상센터 생활
1991년 산문집 <삶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
1997년 첫 번째 인도 여행기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2002년 두 번째 인도 여행기 <지구별 여행자>
2004년 인디언 연설문집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1999년 하이쿠 시모음집 <한 줄도 너무 길다>
1998년 <산에는 꽃이 피네>(법정스님과 공저 )
2001년 <봄 여름 가을 겨울>(법정스님과 공저)
2005년 치유와 깨달음의 시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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